칼럼

흔들릴 때 대책을 더 쌓지 마세요

흔드는 건 사건이 아니라, 내가 찍은 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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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 대책을 더 쌓지 마세요

밤 11시, 문자 한 통에 무너지는 밤

밤 11시입니다. 학원 문 닫고 겨우 소파에 앉았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학부모 항의 문자 한 통. 고작 몇 줄인데, 그날 하루가 통째로 무너집니다. 답장을 썼다 지웠다 새벽 두 시. 머릿속에선 벌써 그 어머니가 다른 학부모들에게 우리 학원 흉보는 장면까지 다 돌아갑니다.

저도 원장이던 시절, 그 의자에 앉아 같은 새벽을 숱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늘 똑같이 움직였어요. 대책을 더 쌓는 겁니다. 상담 매뉴얼을 한 장 더 만들고, 이벤트를 하나 더 열고, 전단지를 더 돌리고. 흔들릴수록 뭔가를 더 했습니다.

그런데 숫자는 안 변하고, 마음은 계속 흔들렸습니다. 한참 뒤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 짚고 있었다는 걸요.

더 많은 대책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원장의 본능은 더하기입니다. 불안하면 행동을 더 쌓습니다. 손이라도 움직여야 불안이 가시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항의 문자 한 통에 새벽까지 흔들리는 그 마음은, 매뉴얼을 한 장 더 만든다고 가라앉지 않습니다. 대책의 양이 부족해서 흔들린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이 우리를 흔드는 걸까요. 여기서 잠깐, 좀 뜻밖의 사람을 한 명 불러오겠습니다.

2000년 전, 로마의 한 황제가 게르만족과 싸우던 도나우 강 전선에 있었습니다. 제국을 다스리는 무게, 끝없는 전쟁, 다가오는 죽음. 그 압박 속에서 그는 매일 밤 천막에서 일기를 썼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이 아니었어요. 출판할 생각도 없이, 오직 흔들리는 자기 자신을 다잡으려고 적은 자기 처방전이었습니다. 그게 우리가 아는 명상록입니다.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고요.

그 일기에서 그는 자신에게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나를 흔드는 것은 바깥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내가 붙인 판단이라고요. 그의 스승 격이었던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똑같이 말했죠.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견해라고.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읽습니다. 항의 문자가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그 문자에 내가 찍은 '나는 무능한 원장이다'라는 도장이 나를 무너뜨린 겁니다. 사건은 몇 줄짜리였는데, 도장은 밤새 자라거든요.

황제의 처방, 더하기 말고 가르기

마르쿠스의 해법은 더 하는 게 아니라 가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두 칸에 나눠 담습니다. 한쪽은 '내 것' 칸이에요. 내 판단, 내 태도, 내 다음 행동이 들어갑니다. 다른 쪽은 '내 것 아님' 칸입니다. 이미 벌어진 사건, 남의 평가, 결과가 여기 들어가요. 그리고 마음은 오직 '내 것' 칸에만 둡니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의 뼈대, 통제의 이분법(쉽게 말하면 어쩔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는 일)입니다. 흔들릴 때 황제가 한 일은 대책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인가를 먼저 물은 거예요.

여기서 한 단계만 더 내려가 보겠습니다. 왜 가르기가 더하기보다 강할까요. 더하기는 통제 밖에 있는 것, 그러니까 남의 마음이나 결과를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끝이 없어요. 반대로 가르기는 통제 밖을 일단 내려놓고, 통제 안에만 힘을 모읍니다. 쓸데없는 곳에 새던 에너지가 쓸 곳으로 모이는 겁니다.

명상록을 끝까지 읽으면 이 가르기를 떠받치는 토대가 하나 더 나옵니다. 일어난 일은 자연이 내린 처방이니 받아들이라는 것이죠. 의사의 처방약이 써도 건강을 위해 삼키듯, 통제 밖의 사건도 거부하는 대신 이걸로 뭘 할까로 바꿔 잡으라는 겁니다. 퇴원 한 명을 재앙이 아니라 우리 상담의 빈틈을 알려준 신호로 받는 순간, 같은 사건이 땔감이 됩니다.

오늘 밤 문자가 오면

추상적인 말로 끝내면 또 좋은 말에 그칩니다. 그래서 오늘 당장 쓸 수 있게 옮겨 보겠습니다. 다음에 항의 문자가 오면, 종이를 한 장 꺼내세요.

먼저 종이를 반으로 접고, 왼쪽에는 사실만 적습니다. 가령 "어머니가 숙제 양에 항의함" 같은 거예요. 오른쪽에는 내가 거기 붙인 해석을 적습니다. "나는 무능하다", "소문날 거다", "망했다" 같은 것들이죠. 그다음 오른쪽 칸을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내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 도장을 떼고 나면, 남는 건 몇 줄짜리 사실뿐이에요. 마지막으로 그 사실에 대해 내가 어쩔 수 있는 단 하나의 행동만 정합니다. "내일 오전에 전화로 5분 설명드린다"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머지, 그러니까 어머니의 기분이나 소문은 '내 것 아님' 칸에 두고 손을 뗍니다.

전에는 항의 문자 한 통에 새벽 두 시까지 대책 다섯 개를 쌓고 자책했다면, 이제는 사실 한 줄과 내일 할 행동 하나를 적고 잠자리에 드는 겁니다.

한 가지만 조심하면 됩니다. '내 것 아님'으로 가른다는 건 책임을 회피하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마르쿠스도 황제의 의무는 끝까지 다하라고 못 박았어요. 받아들임은 포기가 아닙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쓰던 힘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옮기는 일입니다.

흔들릴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대책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성격이 원래 그래요. 플랜 A부터 Z까지 돌려보는, 걱정 많은 사람입니다. 평정심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더군요. 황제도 매일 밤 일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며 연습했습니다. 흔들림을 없애는 게 아니라, 통과시키는 절차를 가진 것뿐이에요.

그러니 오늘 밤 문자가 오거든, 매뉴얼을 한 장 더 만들기 전에 딱 한 번만 멈춰서 물어보세요.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인가. 흔들릴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대책이 아니라, 더 정확한 가르기입니다.

좋은 원장은 안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를 찾는 절차를 가진 사람이다.


명상록 — Τὰ εἰς ἑαυτόν (To Himself)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저 · 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18 (원전 기원후 170년대)

"흔드는 건 사건이 아니라, 내가 찍은 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