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초가 되면 비슷한 장면을 봅니다. 원장님들이 새 학기를 앞두고 학원 콘셉트를 갈아엎습니다. 간판 문구를 바꾸고, 커리큘럼 이름을 새로 짓고, 작년과는 다른 '특별함'을 만들어내려 합니다. 저도 오래 그랬습니다. 콘텐츠를 만들면서, 지난달에 통한 방식이 이번 달에도 통할 리 없다고 믿었습니다. 계속 새것을 찍어내지 않으면 잊힐 것 같았습니다.
그 조바심의 밑바닥에는 한 문장이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게 없다. 그러니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 자책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잘 되는 원장님일수록 오히려 이 말을 자주 합니다.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뭔가 새로운 걸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 그래서 『끌리는 브랜드의 법칙』을 폈을 때, 저는 당연히 "어떻게 하면 더 새롭게, 더 눈에 띄게 차별화할까"를 배우게 될 줄 알았습니다.
책은 정반대를 말했습니다. 새것을 좇지 말고, 이미 가졌는데 감춰둔 하나를 드러내라는 것. 저자는 이걸 '옛것을 혁신하라'고 표현합니다. 처음엔 방어적인 조언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제가 매년 새 콘셉트를 만들며 흘려보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순 위(Soon Yu)는 노스페이스·반스·팀버랜드 같은 서른 개 브랜드를 거느린 VF의 글로벌 혁신 부사장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가 오래 품은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어떤 브랜드는 세월을 견디고 '상징'이 되는데, 어떤 브랜드는 잠깐 반짝하고 유행으로 끝나는가. 그는 이 질문 하나로 쉰 개가 넘는 기업을 파고들었고, 그 답을 '아이코닉 어드밴티지(Iconic Advantage)'라는 이름으로 묶어냈습니다. 공저자 데이브 버스가 여기에 실제 사례 연구를 붙였습니다.
핵심을 저는 나이키 이야기에서 붙잡았습니다. 나이키에는 원래 아폴로 우주선 헬멧 기술을 응용한 에어쿠션이 있었습니다. 처음 나온 신발 '테일윈드'는 이 쿠션을 밑창 안에 얌전히 숨겨뒀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소비자에게는 그저 "속임수 같았다"고 합니다. 좋은 기술이 안에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1987년, 나이키는 그 에어 포켓을 밑창에 투명한 창으로 뚫어 눈에 보이게 드러냅니다. 그게 에어맥스입니다. 이후 10년간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저자의 정리는 짧습니다. "미적 장식이 아니라, 편익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것."
기술은 처음부터 같았습니다. 바뀐 건 딱 하나, 감췄던 걸 드러냈다는 것뿐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학원 상담 장면 하나가 겹쳤습니다. "우리 학원은 정말 아이 하나하나를 챙깁니다"라고 말하는 원장님이 많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학부모에게는 그게 안 보입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요. 반면 어떤 원장님은 매주 아이별 관찰 메모를 문자로 보냅니다. 하는 일은 비슷한데, 한쪽은 감춰뒀고 한쪽은 투명 창으로 뚫어 보여준 겁니다. 테일윈드와 에어맥스의 차이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원장님이 자기 사업을 다르게 볼 여지가 생깁니다. "우리는 특별한 게 없다"는 자책은, 실은 대부분 틀린 진단입니다. 없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겁니다. 테일윈드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이미 들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새 무기를 발명할 게 아니라, 이미 가졌는데 밑창 안에 숨겨둔 편익 하나를 골라 투명 창으로 뚫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저는 이 관점을 얻고 나서, 제 콘텐츠에서 '원래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하나를 찾아 일부러 눈에 보이게 앞으로 꺼내봤습니다. 새 기획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덜 지치고 반응은 더 좋았습니다.
시중의 브랜드 책 상당수는 "차별화하라"를 "새로운 무엇을 만들라"로 번역합니다. 이 책의 차별점은 그 화살표를 뒤집는 데 있습니다. 당신이 투자해야 할 차별점은 새로 만들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이라고. 저자는 경영학의 고전인 마이클 포터의 '차별화냐 저비용이냐' 이분법마저 거부합니다. 상징적인 브랜드에서는 둘이 배타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이미 가진 상징에 계속 투자하면 값도 비싸게 받고 많이 팔리며, 그 덕에 비용이 내려가고, 그 여유를 다시 상징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돈다는 논리입니다. 새것을 좇는 브랜드는 이 선순환을 스스로 끊어버립니다.
책은 이 사상을 세 단계로 정리합니다. 눈에 띄는 힘을 만드는 '주목성', 시간이 지나도 관계가 유지되는 '지속성', 올바른 순서로 넓혀가는 '확장성'. 그리고 이 순서를 지키라고 못을 박습니다. 주목성과 지속성 없이 확장성으로 건너뛰면, 즉 준비 안 된 것을 여기저기 깔아버리면 오히려 신뢰가 무너진다고요. 코치와 마이클 코어스가 그 반례로 나옵니다. 모든 가격대, 모든 매장에 깔린 순간 "어디서도 아무 의미 없는 브랜드"가 됐고, 2014년 코치 매출의 70%가 아웃렛에서 나왔습니다. 저자의 표현으로는 '넓고 얇게'가 아니라 '좁고 깊게'입니다.
지속성 대목에서 킷캣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킷캣에는 은박지를 벗기고 홈을 따라 딱 부러뜨려 나눠 먹는 작은 의식이 있었습니다. 네슬레가 이걸 평범한 비닐 포장으로 바꾸자 그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별것 아닌 습관 하나가 실은 브랜드가 사랑받던 이유였던 겁니다. 저자는 이 원리를 심리학으로 받칩니다. 뉴로센스의 실험에서, 사람이 친숙한 브랜드를 볼 때 뇌에서 켜지는 부위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켜지는 부위와 같았다는 겁니다. 친숙함이 확신이 되고, 확신이 신뢰가 되고, 신뢰가 구매가 됩니다. 그렇다면 매년 다 갈아엎는 행위는, 학부모 머릿속에 겨우 쌓인 그 친숙함을 스스로 지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새 간판을 고민하던 몇 해 동안, 정작 학부모가 기억하는 건 제가 사소하다고 여겨 방치했던 습관 하나라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책이 고마운 지점은, 읽고 덮으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손에 쥐고 반복해서 꺼낼 도구를 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중 제가 실제로 써먹는 건 '1초 실험'입니다. 우리 브랜드를 딱 1초만 보여주고, 무엇이 기억나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아무것도 안 떠오르면, 그건 감춰둔 게 너무 많거나 드러낸 게 없다는 신호입니다. 지속성 파트의 '상징적 연관성 매트릭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친밀도는 특징을 보전해서, 의미는 이야기로, 즐거움은 편익 혁신으로, 흥미는 디자인 갱신으로 만든다는 네 칸짜리 표인데, 우리가 지금 어느 칸이 비었는지 점검하기 좋았습니다. 이런 건 서평에 다 옮기기보다 책에서 직접 만나시는 편이 낫습니다. 헨드릭스 진이 어떻게 '역사적 환상'을 만들어 팔렸는지, 겨울왕국이 개봉 전에 이미 무엇을 준비했는지 같은 사례들이 각 도구에 살로 붙어 있으니까요.
솔직하게 한계도 적습니다. 저는 이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아이코닉 어드밴티지의 뼈대인 앞의 다섯 개 장을 정독했고, 조직을 어떻게 준비시키는지·상징적 언어를 어떻게 설계하는지를 다루는 뒷부분은 다음 회전에 남겨뒀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무엇을 왜'까지의 지도이지, '어떻게 조직으로 굴리는가'의 완결편은 아닙니다. 또 사례가 나이키·BMW·디즈니 같은 거대 브랜드에 쏠려 있어, 동네 가게나 1인 콘텐츠로 옮길 때는 규모를 덜어내는 번역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원리 자체는 규모를 타지 않았습니다. 감춘 걸 드러내는 데 큰 예산이 드는 건 아니니까요.
새것을 못 만들어 조바심 내던 저에게 이 책이 남긴 건, 브랜딩이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에어맥스가 팔린 건 새 기술이 아니라, 원래 있던 기술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주에 제가 해본 것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것 하나를 종이에 적고, 그걸 어떻게 밖에서 보이게 할지만 궁리했습니다. 특별한 걸 새로 만들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미 가진 하나를 밑창 밖으로 꺼내면 됐습니다.
책 정보
- 제목: 끌리는 브랜드의 법칙
- 원제: Iconic Advantage (2018)
- 지은이: 순 위(Soon Yu) · 공저 데이브 버스(Dave Bi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