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노트

공부 안 하는 학생을 다그치기 전에 길부터 바꿔라

안 움직이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 3분 읽기

공부 안 하는 학생을 다그치기 전에 길부터 바꿔라

옆 나라끼리 장기기증 동의율이 12퍼센트와 99퍼센트로 갈립니다. 국민성 차이라고요? 아닙니다. 딱 하나, '기본값'만 달라요. 한쪽은 "원하면 신청", 다른 쪽은 "원치 않으면 해지"였을 뿐입니다. 사람은 대개 길이 미리 나 있는 쪽으로 그냥 갑니다. 의지가 아니라 길이, 결과를 정한 거죠.

리처드 탈러(이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와 캐스 선스타인의 『넛지』가 던지는 게 이겁니다. 우리는 사람이 안 움직이면 "의지가 없다"고 탓해요. 그런데 대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두 저자는 제3의 길을 냅니다. 강요(규제)도 방임(설득)도 아니라, 선택의 자유는 100퍼센트 두면서 길만 살짝 손봐 더 나은 쪽으로 흐르게 하는 것. 이걸 '넛지(옆구리 슬쩍 찌르기)'라 부릅니다.

이 책을 학원에 들이면 보통 학부모 설득에 씁니다. 등록까지 가는 길을 매끄럽게 깔라고요. 좋은 쓰임이에요. 그런데 저는 더 자주, 원장님이 발을 동동 구르는 자리를 봅니다. 공부 안 하는 학생이요. "쟤는 의지가 없어서…" 하고 한숨 쉬는 그 학생 말입니다. 넛지의 눈으로 보면,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공부로 가는 길에 턱이 너무 많은 거예요.

가장 센 건 길의 출발 방향, 곧 기본값입니다. 학생에게 "끝나고 자습하고 갈 사람?"이라고 물으면(원하면 신청) 아무도 안 남아요. "오늘은 다 같이 30분 자습하고, 일찍 갈 사람만 말하기"(안 하면 자동)로 기본값을 뒤집으면 대부분 남습니다. 같은 학생, 같은 의지, 길만 바꿨을 뿐이에요.

다음은 길 위의 턱을 치우는 일입니다. 예일대 학생들에게 파상풍 위험을 아무리 강의해도 접종률은 3퍼센트였는데, 보건소 지도 한 장과 "언제 갈지" 적는 칸을 더하니 28퍼센트로 뛰었어요. 마음을 바꾼 게 아니라 가는 길의 턱을 치운 겁니다. 숙제도 그래요. "문제집 풀어와"는 턱투성이예요(어디서부터? 어디까지?). "32쪽 1~5번만, 오늘 밤 9시 전에"처럼 잘게 쪼개고 책상에 미리 펴두게 하면 시작 턱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학원 와서 가방 뒤지고 자리 찾는 그 5분은 못된 턱(저자들은 '슬러지'라 부릅니다)이고요.

길을 닦았는데도 망설이면, 표지판 하나가 듣습니다. 영국이 세금 독촉장에 "10명 중 9명은 제때 냅니다" 한 줄을 넣자 납부가 늘었어요. 학생도 "우리 반 8명 중 7명이 어제 오답노트 냈어" 한마디가 잔소리보다 셉니다. 단, 반드시 진짜 숫자여야 해요. 거짓 표지판은 그 자리에서 신뢰를 깹니다.

같은 원리가 강사에게도 통합니다. 새 교수법을 "도입하세요"라고 미는 대신 기본 양식·기본 절차에 슬쩍 심어두면 자연히 따라와요. 다만 넛지는 만능이 아닙니다. 기초 학력 결손 같은 큰 문제는 길 몇 개 손본다고 안 풀려요. 그리고 윤리. 학생을 가두려고(억지로 자습에 묶어두기) 쓰면 저자들이 가장 세게 비판하는 슬러지가 됩니다. 기준은 하나예요. "이 설계를 학생·학부모에게 그대로 설명해도 떳떳한가?" 떳떳하지 않으면 그건 넛지가 아니라 조작입니다.

안 움직이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어서입니다.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사람이 걷는 길을 바꾸세요.

그러니 다음에 "쟤는 왜 저럴까" 한숨이 나오면, 그 학생을 탓하기 전에 딱 한 번만 물어보세요. 지금 이 아이가 걷는 길에, 내가 못 본 턱이 하나 있는 건 아닐까?


넛지: 파이널 에디션 — Nudge: The Final Edition
리처드 탈러 · 캐스 선스타인 저
원서 Penguin · 2021 (국내 번역본 별도)

"안 움직이는 건 의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는 길에 작은 턱이 하나 있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