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트도 신발끈도 빼앗긴 독방의 죄수가 있습니다.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담배를 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그는 간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0초 안에 안 주면 저 벽에 머리를 박아 피투성이가 되겠소. 그리고 깨어나면, 당신이 때렸다고 증언하겠소." 객관적인 힘은 0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수가 '이 사람이 날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없던 힘이 생겼어요. 간수는 담배를 내줬습니다.
허브 코헨이 『You Can Negotiate Anything』에서 드는 이 장면을, 저는 학원 상담실로 그대로 읽었습니다. 힘은 통장 잔고처럼 객관적으로 쥐는 게 아니라 상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게 얼굴에, 표정에 실린다는 것.
부끄럽지만 저는 오래 그 반대로 했습니다. 정원이 빈 3월이면 상담에서 말이 많아졌어요. 묻지도 않은 혜택을 먼저 꺼내고, '이 한 명을 꼭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얼굴에 다 흘렸죠. 죄수는 가진 게 없어도 힘 있어 보였는데, 저는 가진 게 많아도 힘없어 보였습니다. 차이는 표정 하나였어요.
코헨은 미국에서 정부와 기업의 협상 수천 건을 자문한 사람이고, 방송인 래리 킹의 협상 스승으로도 불립니다. 1980년에 나온 이 책은 협상 대중서의 원조 격이에요. 그가 협상의 결과를 좌우한다고 본 건 힘·시간·정보 셋인데, 그 첫째인 '힘'을 저렇게 뒤집습니다. "힘은 인식이다. 가졌다고 믿으면 가진 것이고, 없다고 믿으면 가졌어도 없는 것이다."
원장님께 이게 왜 중요할까요. 대형 학원만 힘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은 학원도 전문성, 쌓인 후기, 한 아이를 끝까지 보는 끈기라는 힘을 쥐고 있어요. 문제는 그걸 인식시키느냐죠. 반대로, 정원이 비어 절박한 날에도 그 절박함만큼은 절대 얼굴에 내비치면 안 됩니다. 책엔 "당신네 돈 필요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 오히려 41개 은행에서 거액을 빌린 사람이 나와요. 필요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더 내줍니다.
표정 다음은 시간입니다. 코헨은 협상을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길게 흐르는 과정으로 보라고 해요. 그가 일본에 14일 일정으로 협상하러 갔던 이야기가 압권입니다. 일본 측은 그의 귀국 비행기표, 곧 데드라인부터 알아냈어요. 그러고는 12일간 관광과 만찬만 시켰죠. 정작 협상은 공항 가는 마지막 날 차 안에서야 시작됐습니다. 빈손으로 갈 수 없던 코헨은 그 자리에서 양보하고 말았어요. 상대는 그의 마감을 알았고, 그는 상대의 마감을 몰랐습니다. 상담도 똑같아요. 등록의 승부는 상담 당일이 아니라 문의 전화·설명회·후기를 보던 그 전 단계에서 이미 기울어 있습니다. 그리고 코헨은 "No는 입장이 아니라 반응"이라고 해요. 첫 상담의 "생각해볼게요"는 거절이 아니라 '아직 낯설다'는 반응일 때가 많습니다. 잘게 나눈 정보를 시차를 두고 다시 건네면 그 No가 Yes로 바뀌기도 하고요.
가장 반직관적인 말은 마지막에 옵니다. "신경 쓰되, 그렇게까지는 말라." 코헨은 "당신이 무언가를 꼭 가져야 한다고 느낄 때, 당신은 늘 최고가를 치른다"고 단언해요. '꿈의 집'을 15만 달러에 내놓은 매물을 13만에 사고 싶던 사람이, "못 사면 아내가 못 견딘다"며 너무 간절해서 결국 호가 그대로 15만을 다 냈습니다. 반대로 미국 기업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다 듣고 일본 측이 한 말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해주시겠어요?"였어요. 무력함을 가장하자 상대의 호가가 무너졌습니다. 약점이 힘이 된 거죠.
다만 이 책은 1980년 냉전기에 쓰여, 'Win-Lose' 전술을 '소련식'이라 부르는 등 시대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개념은 살아 있지만 표현은 걸러 읽어야 해요. 그리고 일화의 달인이라 그만큼 체계적 절차는 약하고, 신뢰가 깊이 쌓인 단골 학부모에게까지 게임하듯 굴면 관계를 잃습니다. 이 책은 낯선 첫 상담에서 강하고, 오래된 관계에서는 약해요.
한 명을 꼭 잡아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원장님은 이미 최고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협상력은 정원이 차 있느냐가 아니라 "이 한 명을 놓쳐도 우리 학원은 괜찮다"는 여유에서 나오니까요. 그리고 그 여유는 말이 아니라 얼굴에 실립니다.
다음 상담에 들어가기 전, 그 독방의 죄수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가진 게 하나도 없는데도 힘 있어 보였던, 그 표정을요.
| You Can Negotiate Anyth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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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브 코헨(Herb Cohen) 저 |
| Citadel Press · 1980 (국내 번역본 별도) |
"한 명을 꼭 잡아야 한다고 느끼는 순간, 원장님은 이미 최고가를 치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