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저는 한 결정에 완전히 확신했습니다. 자리도 좋고, 타이밍도 맞고, 머릿속에서 그림이 너무 깔끔하게 그려졌거든요. 주변에서 말려도 "이건 됩니다"라고 했어요. 결과는 빗나갔습니다. 이상한 건 빗나간 결과가 아니라 그때의 확신이었어요. 그렇게까지 확신했는데 어떻게 틀릴 수가 있지?
대니얼 카너먼이 그 질문에 답을 줬습니다. 그런데 답이 제 예상과 정반대였어요. 그는 심리학자인데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경제학은 오랫동안 '인간은 합리적으로 계산한다'고 가정했는데, 카너먼이 그 가정을 통째로 무너뜨렸거든요.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그런데 예측 가능하게 비합리적이다.
여기까진 다른 책에도 나옵니다. 이 책이 진짜 다른 건 그다음이에요. 보통의 자기계발서는 "이 편향을 알았으니 이제 조심하면 안 빠진다"고 합니다. 카너먼은 정반대를 말해요. "알아도 못 고친다." 평생 이 편향을 연구한 자기 자신조차 여전히 똑같이 틀린다고 고백합니다. 개인의 의지로는 잘 안 되고, 오직 절차와 언어로만 줄일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이 책은 당신을 더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책이 아닙니다. 운전을 더 잘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내 차의 사각지대가 정확히 어디인지 비춰주는 사이드미러 같은 책이에요. 사각지대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어디가 안 보이는지를 알게 되죠.
그 사각지대 중 첫째는 지친 밤의 나 자신입니다. 카너먼은 머릿속에 두 일꾼이 산다고 해요. 빠르고 자동인 '시스템 1'(직관)과, 느리고 힘든 '시스템 2'(숙고). 문제는 시스템 2가 게으르다는 거예요. 피곤하면 더 게을러집니다. 한 연구에서 가석방 심사 판사들은 식사 직전 허기진 상태에서 승인율이 거의 0까지 떨어졌어요. 같은 판사, 같은 서류인데 배가 고프냐 아니냐로 사람의 운명이 갈린 겁니다. 그러니 큰 결정(고액 투자·계약·해고)은 밤 10시 넘은 시간이나 진 빠진 날로 미루세요. 지친 저녁의 즉흥 할인은, 시스템 2가 잠든 사이 사각지대에서 나온 결정일 때가 많습니다.
둘째 사각지대는 "혼냈더니 올랐다"는 착각이에요. 카너먼이 이스라엘 공군 교관들에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칭찬하면 다음엔 못하고, 야단치면 다음엔 잘한다. 그러니 벌이 효과적이다." 그럴듯하죠. 그런데 카너먼은 그게 그냥 '평균 회귀'라고 해요. 유난히 잘한 다음엔 평소만큼, 유난히 못한 다음에도 평소만큼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변동이지, 칭찬이나 벌의 효과가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한 번의 시험 점수로 "내 지도법이 맞다, 틀렸다"를 결론짓지 마세요. 그 학생의 여러 번 평균을 봐야, 진짜 효과인지 그냥 운의 되돌이인지 보입니다.
셋째 사각지대가 제일 무섭습니다. "우리는 다르다"는 믿음이요. 카너먼의 교과서 제작팀은 완성까지 "약 2년"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팀들의 실제 기록을 묻자, 40퍼센트는 아예 실패했고 성공한 팀도 7년 넘게 걸렸어요. 팀은 그 통계를 무시하고 강행했고, 결과는 8년 걸려 폐기였습니다. 그러니 신사업·확장·개원을 결정하기 전, "우리 학원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비슷한 학원은 어땠나"라는 숫자부터 찾으세요. 생존율이든 걸린 기간이든요. 내 사례의 특별함은 그다음에 조금만 반영하면 됩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 책을 줄곧 불편해할 분도 있어요. "내 직관은 빠르고 대체로 맞다"고 믿는 분, 일단 빨리 결정부터 내리고 싶은 분에겐 책 전체가 거슬릴 겁니다. "당신의 확신은 근거가 아니라 느낌"이라고 600쪽 내내 말하니까요. 다만 오해는 마세요. 카너먼은 직관을 폄하하지 않습니다. 소방관이나 체스 고수의 숙련된 직관은 귀하다고 분명히 적어요. 다만 그게 통하는 조건, 그러니까 규칙적이고 반복 학습된 환경을 벗어났을 때를 경계하라는 겁니다.
이 책엔 사각지대가 수십 개 더 그려져 있습니다. 같은 물건도 '내 것'이 되면 값이 뛰는 이유, "90퍼센트 생존"과 "10퍼센트 사망"이 전혀 다른 선택을 부르는 이유 같은 것들요. 그 장면들이 결국 한 가지를 가리킵니다. 원장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모를 때'가 아니라 '확신할 때'라는 것. 확신은 정보가 충분해서가 아니라 머릿속 이야기가 매끄러워서 생기거든요. 그래서 아는 게 적을수록 오히려 더 확신하게 됩니다.
이 책은 당신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당신이 언제 틀리는지, 그 순간에 이름을 붙여줄 뿐입니다.
이번 주에 딱 하나만 해보세요. 지금 확신하고 있는 결정 하나를 골라, "비슷한 사례는 실제로 어땠나"라는 숫자 하나를 찾아보는 겁니다. 그 숫자가 당신의 확신을 흔들면, 그게 이 책이 일한 겁니다.
| 생각에 관한 생각 — Thinking, Fast and Sl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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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카너먼 저 · 이창신 역 |
| 김영사 · 2018 |
"이 책은 당신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당신이 언제 틀리는지, 그 순간에 이름을 붙여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