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학생이 줄던 한 원장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분의 대책은 한결같았어요. "이번엔 전단지를 5천 장 더 돌려보려고요." 지난봄엔 무료 체험 이벤트, 여름엔 형제 할인, 가을엔 블로그였습니다. 매번 새로 쥐어짜낸 한 방이었죠. 좋게 말하면 부지런하고, 솔직히 말하면 매번 맨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중이었어요. 제가 물었습니다. "지난번 전단지, 몇 명이 반응했는지 아세요?" 원장님은 멈칫하셨습니다. 모르셨어요. 사실 저도 똑같았습니다. 원장이던 시절, 저도 마케팅을 감으로 했거든요. 번뜩 떠오르면 지르고, 안 되면 다음으로 넘어갔죠.
그러다 앨런 딥의 이 책을 만났습니다. 호주의 연쇄 창업가인데, 제 마음을 끈 건 이 사람이 한때 수백 페이지짜리 사업계획서를 쓰다 실패한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정반대로 갔습니다. 마케팅 계획을 딱 한 장으로 줄인 거죠. 오해는 마세요. 마케팅을 가볍게 본 게 아닙니다. 시중의 마케팅 책들은 대개 두꺼워요. 브랜딩이 어떻고 포지셔닝이 어떻고 이론이 첩첩이 쌓이죠. 다 읽고 나면 머리는 가득 차는데 "그래서 내일 아침 뭘 하지?"에는 답이 없습니다. 딥은 그 무게를 덜어내, 마케팅 전체를 세 단계 아홉 칸짜리 표 한 장에 담아요. 잠재고객을 만나는 전(前), 관심 보인 사람을 고객으로 바꾸는 중(中), 산 사람을 단골과 소개자로 키우는 후(後). 칸을 채우면 됩니다.
저는 이걸 비행 전 체크리스트에 빗댑니다. 수만 시간을 난 베테랑 조종사도 이륙 전엔 매번 한 장짜리 체크리스트를 손가락으로 짚어 내려가요.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빠뜨리면 사람이 죽기 때문이죠. 명장의 주방도 같습니다. 손맛 좋은 셰프도 그날 기분으로 간을 보지 않아요. 레시피 한 장이 있어 어제와 오늘의 맛이 같죠. 딥의 마케팅도 그렇습니다. 천재의 감이 아니라, 누가 짚어도 같은 순서로 굴러가는 한 장. 그 체크리스트의 칸을 짚어 내려가다 보면, 원장이 늘 빠뜨리던 항목 세 개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 칸에서 딥은 따끔하게 말해요. 당장 살 사람은 시장의 3퍼센트뿐이라고요. 전단지로 "지금 등록하세요!"만 외치면 마음이 안 선 나머지 97퍼센트를 통째로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사냥꾼이 아니라 농부가 되라고 해요. 광고의 목적을 '판매'에서 '관심 있는 사람 찾아내기'로 바꾸는 거죠. 전단지 문구를 "등록 시 10퍼센트 할인"에서 "중2 수학,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 알려드리는 무료 점검표 드립니다"로 바꿔 보세요. 받아 간 학부모의 연락처도 한곳에 모으고요. 오늘 등록 안 해도 그 명단이 다음 달, 내년의 고객 후보입니다.
다음 칸은 꾸준함이에요. 원장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이벤트 한 방으로 끝내려는 마음이거든요. 설명회 한 번 열고 안 되면 "역시 전단지는 안 돼"라며 다음 한 방을 찾죠. 딥은 정반대로 봅니다. 자동차 영업왕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조 지라드 이야기가 나와요. 그는 고객들에게 매달 안부 카드를 보냈는데, 한두 장이 아니라 매달 1만 장이 넘었답니다. 특별한 멘트도 아니고, 그저 잊지 않고 꾸준히 닿았을 뿐이에요. 영업사원 절반은 한 번 연락하고 포기하지만, 지라드는 농부처럼 매달 물을 줬습니다. 그러니 마케팅을 머릿속 '언젠가'가 아니라 달력에 박으세요. "매주 화요일 오전엔 기존 학부모에게 짧은 학습 팁 문자"처럼 요일과 시간을 정해서요.
마지막 칸이 저를 가장 부끄럽게 했습니다. 측정이에요. 딥은 영세사업이 대기업의 '회사 이름 알리기' 광고를 흉내 내면 망한다고 단언합니다.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예산만 태우니까요. 대신 광고마다 "1원을 넣어 몇 원이 돌아왔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요. 응답률 같은 겉숫자 대신, 고객 한 명을 데려오는 비용과 그 학생이 끝까지 다니며 내는 평생 가치를 보라는 거죠. 여기엔 작지만 무서운 지렛대가 숨어 있어요. 핵심 숫자 몇 개를 각각 조금씩만 끌어올려도 순이익은 곱하기로 불어납니다. 작은 경첩이 큰 문을 움직이는 셈인데, 그 구체적인 계산은 책에서 직접 보시길 권해요. 표를 보는 순간 "그동안 깜깜이로 돈을 태웠구나" 싶으실 겁니다.
다만 두 부류에겐 이 책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 정작 수업의 질이 흔들리는 원장님이에요. 이 책은 손님을 데려오는 시스템이지, 그 손님을 만족시키는 책이 아닙니다. 좋은 레시피가 있어도 재료가 상했으면 맛이 날 리 없죠. 마케팅을 잘할수록 부실한 수업의 민낯만 더 빨리 퍼집니다. 둘째, '한 장'이라는 말에 쉬워 보여 채우자마자 손을 떼는 분입니다. 한 장은 시작점이지 끝이 아니에요. 조종사가 매 비행 체크리스트를 짚듯, 이 한 장도 매주 숫자를 고쳐 넣어야 삽니다. 한 번 채우고 서랍에 넣으면 죽은 종이예요.
여기서 저는 평소 붙드는 한 가지와 만났습니다. Why 없는 노하우는 결국 가격 경쟁으로 끝난다는 것. 한 장이 중요한 건 효율 때문만이 아니에요. 전·중·후를 한눈에 놓고 보면 "우리 학원은 어떤 학부모에게, 왜 필요한가"라는 빈칸을 더는 피할 수 없거든요. 감으로 지를 땐 묻지 않아도 됐던 질문이, 한 장 앞에선 정면으로 떠오릅니다.
마케팅은 번뜩이는 영감이 아닙니다. 한 장에 적어 매번 같은 순서로 굴리는 시스템입니다.
이번 주에 딱 하나만 해보세요. A4 한 장에 세 칸을 그으세요. 왼쪽 '아직 우리를 모르는 사람', 가운데 '관심은 보였지만 등록 안 한 사람', 오른쪽 '이미 다니는 학생'. 각 칸에 "지금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나"를 적어 보세요. 가장 비어 있는 칸이 이번 분기 손댈 곳입니다.
| 1페이지 마케팅 플랜 — The 1-Page Marketing P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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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딥 저 · 홍석윤 역 |
| 알파미디어 · 2022 |
"마케팅은 번뜩이는 영감이 아닙니다. 한 장에 적어 매번 같은 순서로 굴리는 시스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