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노트

입장 말고 이해관계를 협상하라

강사가 '월급'을 말할 때, 그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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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말고 이해관계를 협상하라

"협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죠. 가운데 파이 하나를 놓고, 내가 한 입 더 먹으면 상대가 한 입 덜 먹는 줄다리기. 더 세게 부르거나, 적당히 반으로 자르거나. 그런데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는 그 그림 자체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파이는 하나가 아닐 때가 더 많다고요.

오렌지 하나를 두고 두 자매가 다퉜습니다. 둘 다 "내가 가질래." 똑같은 입장이었죠. 공평하게 반으로 갈랐어요. 그런데 언니는 빵 구우려고 껍질만, 동생은 주스 짜려고 과육만 필요했습니다. 반으로 가르는 바람에 둘 다 절반을 버렸어요. "왜 원하느냐"고 한 번만 물었다면, 언니는 껍질을 통째로 동생은 과육을 통째로 가졌을 텐데요. 입장은 부딪쳤지만, 이해관계는 부딪칠 일이 없었던 겁니다.

하버드 공개강의 연구회가 엮은 이 책은,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의 그 유명한 『Getting to Yes』 연구를 사례로 풀어낸 입문서예요. 핵심은 한 문장입니다. 입장(겉으로 내세우는 요구) 말고 이해관계(그 밑에 숨은 진짜 욕구)를 협상하라. 이걸 '원칙협상'이라 부릅니다.

이 오렌지를, 원장님은 보통 학부모 상담에 씁니다. "옆은 28만원이던데요"의 진짜 속내를 캐는 데요. 좋아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이 더 비싸게 쓰이는 자리를 봅니다. 강사와의 협상이요.

강사가 찾아와 "월급을 올려주세요"라고 합니다. 입장이죠. 많은 원장님이 그 순간 바로 파이 줄다리기에 들어갑니다. 줄 수 있다, 없다. 그런데 "왜 지금 그게 중요하세요?"라고 한 겹 아래를 물으면, 전혀 다른 게 올라올 때가 많아요. 옆 학원 친구보다 적게 받는다는 자존심일 수도, 담임 반이 너무 많아 지쳤다는 신호일 수도, "내가 여기서 인정받고 있나"라는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돈은 그 모든 걸 담는 가장 거친 그릇일 뿐이에요. 자존심이면 호칭이나 직책으로, 소진이면 반 배분으로, 인정 욕구면 공개적인 신뢰 한마디로 풀립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더 깊이 풀리는 길이, '월급'이라는 입장 밑에 숨어 있는 거죠.

이게 통하려면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이 책이 거듭 강조하는 '일과 사람의 분리'예요. 입장 싸움이 무서운 건, 어느새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월급은 안 됩니다"가 "요즘 욕심이 너무 많아졌네요"로 미끄러지는 순간, 강사는 마음을 닫아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노려보는 그림이 아니라, 둘이 나란히 앉아 같은 종이 한 장을 같이 들여다보는 그림으로 바꾸세요. 적은 강사가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인 '이 강사가 어떻게 하면 여기서 오래 잘 가르칠까'라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내 고집도 상대 고집도 아닌 '객관적 기준'을 올려놓으세요. 동종 경력·동종 지역의 급여 수준, 우리 학원의 정해진 호봉표 같은 거요. "내가 짜서"가 아니라 "기준이 그래서" 정해지면, 못 올려줘도 강사의 자존심이 안 상합니다.

다만 이 책은 사례 모음 입문서라 넓게 훑기엔 좋지만 깊이는 얕고, 류재언 『협상 바이블』과 개념·사례가 많이 겹쳐요. 그리고 원칙협상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가 끝까지 힘겨루기로만 나오고 같이 파이를 키울 뜻이 전혀 없으면, "이해관계를 봅시다"는 순진한 양보로 이용당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책도 결렬 시의 대안(BATNA)을 함께 쥐라고 합니다. 정말 떠날 강사인지,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는 거죠. 윈-윈은 선의가 아니라 준비된 자의 전략입니다.

강사가 "월급"을 말할 때, 그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수강료를 깎으려는 학부모도, 사실은 다른 걸 원하고 있고요.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원장님께 무언가를 요구하면, 그 자리에서 답하기 전에 딱 한 번만 스스로 물어보세요. 이 사람이 진짜 원하는 건, 정말 이것일까?


하버드 협상 강의 — 哈佛谈判课
하버드 공개강의 연구회 저 · 송은진 역
작은우주(북아지트) · 2018

"강사가 '월급'을 말할 때, 그가 진짜 원하는 건 돈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