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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심리·행동·관계2026.09.1113분 읽기


옆 학원을 베껴도 안 되는 이유

몇 해 전, 잘 되는 학원 한 곳을 통째로 벤치마킹한 원장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학원의 상담 스크립트, 시간표 구성, 심지어 대기실 안내문 문구까지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도 등록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똑같이 했는데 왜 저 집은 되고 저는 안 될까요. 제가 뭘 놓친 걸까요."

저도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말을 못 했습니다. 저 역시 잘 되는 곳의 방법을 베껴본 사람이었고, 베낀 게 그대로 재현되지 않을 때마다 제 실행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했으니까요. 그 답을 엉뚱한 책에서 만났습니다. 심리학 책인 줄 알고 폈는데, 첫 장이 물리학이었습니다.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은 확증편향, 프레이밍, 휴리스틱 같은 마흔 개 남짓의 심리 개념을 한 장씩 다루는 책입니다. 목차만 보면 서점에 흔한 심리 교양서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저도 "또 아는 얘기겠거니" 하고 반쯤 덮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저자 이영직은 그 마흔 개의 심리를 곧장 설명하지 않습니다. 책의 맨 앞 세 장을 카오스, 복잡계, 행동경제학이라는 틀에 씁니다.

처음엔 이게 왜 심리책 앞에 있나 싶었습니다. 머리말을 다시 보고서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생각이란 결국 뇌라는 물건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그 뇌가 어떤 종류의 시스템인지를 먼저 알아야 행동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신경세포 천억 개, 시냅스 천조 개가 얽힌 뇌는 전형적인 복잡계라는 겁니다. 심리를 심리로 설명하지 않고, 심리가 올라앉은 바닥부터 갈아엎는 이 순서가 이 책의 숨은 한 수였습니다.

여기서 이 책의 자리가 분명해집니다.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 인간의 판단 오류를 현미경으로 한 종씩 해부한다면, 이 책은 그 오류들을 복잡계라는 한 장의 지도 위에 올려놓습니다. 개별 개념의 깊이는 카너먼이 더 깊습니다. 대신 이 책은 "왜 인간의 행동이 애초에 예측하기 어렵게 생겨먹었는가"를 물리학의 언어로 한 발 뒤에서 조망합니다. 심리 개념을 여럿 아는 것과, 그것들이 왜 다 같이 어긋나는지를 아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저자가 빌려온 물리학의 틀 하나가 저를 오래 붙잡았습니다. 세상의 시스템을 예측 가능성에 따라 네 칸으로 나누는 겁니다. 맨 앞은 선형계입니다. 원인 하나에 결과 하나가 딱 떨어지는 뉴턴의 세계, 정답이 하나인 기계입니다. 맨 뒤는 주사위입니다.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순전한 운의 세계입니다. 그 사이에 카오스가 있고, 카오스와 선형계 사이에 복잡계가 있습니다. 복잡계의 정의가 절묘합니다. 정확한 결과는 못 맞히지만, 패턴은 읽어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학원은 정답이 하나인 기계도, 다 운에 맡긴 주사위도 아니라, 결과는 못 박아도 패턴은 읽히는 복잡계였습니다.

이 네 칸을 학원에 대보면 원장의 두 가지 흔한 오해가 한꺼번에 보입니다. 한쪽 끝에는 학원을 선형계로 다루는 원장이 있습니다. "이 광고를 걸면 이만큼 온다, 이 커리큘럼이면 성적이 오른다"는, 입력 하나에 출력 하나를 기대하는 사고입니다. 잘 되는 학원의 스크립트를 그대로 옮기면 그대로 재현될 거라 믿는 것도 여기 속합니다. 반대쪽 끝에는 몇 번 데인 뒤 "다 운이지 뭐, 될 놈만 되는 거야"라며 주사위 쪽으로 도망친 원장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학원이 그 둘 사이, 복잡계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옆 학원을 통째로 베껴도 결과가 다른 건, 원장님의 실행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같은 입력이 같은 출력을 내지 않는 것이 복잡계의 본질입니다. 상담 문구 하나가 어느 학원에선 신뢰가 되고 다른 학원에선 부담이 되는 건, 그 문구가 놓인 원장의 표정, 학원의 평판, 동네의 분위기라는 수많은 변수와 얽혀 창발하기 때문입니다. 창발성이란 부분을 다 합쳐도 예측되지 않는 새 질서가 전체에서 솟는 것을 말합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큽니다. 그러니 부분인 스크립트만 복사해서는 전체인 등록률이 옮겨오지 않습니다.

베껴지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그건 원장님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학원이 애초에 복사가 안 되는 종류의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만나고서야, 재현에 실패할 때마다 저를 탓하던 오래된 습관을 하나 내려놓았습니다.

그럼 복잡계 앞에서 원장은 손을 놓아야 할까요. 저자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복잡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작은 것을 봐야 한다고요. 이 책에 나오는 오링 이론이 그렇습니다. 챌린저호는 1센티미터짜리 고무 오링 하나가 얼어붙어 폭발했습니다. 물리학자 파인만이 그 고무를 얼음물에 담가 증명했지요. 거대한 시스템일수록 가장 약한 작은 부품에서 무너진다는 겁니다.

되먹임이라는 개념도 짝을 이룹니다.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돌아가 증폭되는 현상입니다. 눈덩이가 구를수록 커지고, 작은 기압 차가 태풍이 되는 원리이지요. 이 책은 심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며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듭니다. 유리창 하나 깨진 채 방치된 차는 일주일 만에 통째로 털립니다. 사소한 무질서 하나가 "여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곳"이라는 신호로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뉴욕이 지하철 낙서부터 지운 뒤 범죄가 크게 줄어든 게 그 반대 증거입니다.

학원이 흔들릴 때 그 시작은 대개, 원장이 사소하다고 넘긴 1센티미터짜리 무언가였습니다.

저는 이 두 개념을 학원 현장에서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학부모가 학원을 떠나는 결정적 계기는 대개 성적표가 아니라, 전화 응대의 무성의한 한마디, 오래 방치된 신발장, 상담실의 퀴퀴한 첫인상 같은 1센티미터짜리 것들이었습니다. 그 하나가 "이 학원은 관리가 안 된다"는 인상으로 되먹임되어 번집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학원을 도울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리큘럼 점검이 아닙니다. 학부모가 학원과 처음 마주치는 지점 세 곳, 그러니까 첫 전화와 현관, 그리고 상담실 문을 열고 나서의 3초를 원장님과 나란히 서서 봅니다. 이번 주에 원장님이 딱 하나만 해보신다면, 큰 걸 바꾸기 전에 우리 학원의 가장 약한 오링이 어디인지를 손님의 눈높이에서 찾아보시는 걸 권합니다.

이 책엔 이 밖에도 원장의 무릎을 치게 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작년에 통하던 전략이 올해 안 먹히는 이유를 생물의 공진화로 설명하는 붉은 여왕 이야기, 듣기 좋은 보고만 원하는 순간 조직이 눈멀어간다는 후진 기어 없는 차 이야기, 아무도 원치 않았는데 서로 눈치만 보다 도달하는 회의실의 헛된 합의를 다룬 애빌린 패러독스. 하나하나가 학원 운영의 한 장면과 맞닿습니다. 다만 여기서 다 풀어버리면 책을 펼 이유가 없어지니, 입구만 열어두겠습니다.

솔직한 한계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 책은 마흔 개 개념을 넓게 훑는 옴니버스라, 하나하나를 끝까지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확증편향이나 프레이밍을 이미 여러 책에서 만난 분이라면 개별 챕터는 익숙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값어치는 개념의 새로움이 아니라, 그것들을 물리학이라는 한 실로 꿰는 배치에 있습니다. 낱개의 깊이를 원한다면 카너먼이, 큰 지도를 원한다면 이 책이 맞습니다. 그리고 판권 정보가 덜 정리된 판본이 돌아다니니, 구하실 땐 서지사항을 한 번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저는 이 책을 덮으며 오래 자책하던 질문 하나를 바꿔 들었습니다. 예전엔 "옆 학원은 되는데 나는 왜 안 되지"를 물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학원이라는 복잡계에서, 지금 되먹임으로 커지고 있는 작은 신호는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답을 옆집에서 베껴올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우리 학원만의 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옆 학원을 베껴도 결과가 다른 건 제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원이 애초에 복사되지 않는 복잡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끼기를 그만둔 자리에서야, 비로소 우리 학원이 보였습니다.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 부제 카오스부터 행동경제학까지 / 이영직 저 / 출판사·발행연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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