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원장이던 시절, 밤 열한 시가 넘어 문자 한 통이 오면 그날 밤은 사실상 끝난 거였습니다. 학부모 항의 문자. 길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 반 이렇게 운영하시는 거 맞나요?" 딱 한 줄이었는데, 저는 그 한 줄을 새벽 두 시까지 붙잡고 있었습니다. 답장을 열 번을 고쳐 썼다가 지웠습니다. 다음 날 수업이 손에 안 잡혔고, 그 주 내내 그 학부모 얼굴이 상담실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때 제가 저를 두고 내린 진단이 있었습니다. "나는 멘탈이 약한 사람이구나." 옆 학원 원장님은 항의 전화를 받아도 툭툭 털고 다음 상담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문자 한 통에 하루를 통째로 날린다. 이건 성격 문제고, 성격은 안 바뀌니까 나는 이 일에 안 맞는 사람인가. 오래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진단이 틀렸다고 봅니다. 정확히는, 진단을 엉뚱한 곳에 내렸던 겁니다.
흔들린 건 문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하나 짚고 가겠습니다. 그날 밤 저를 흔든 게 정말 그 문자 한 줄이었을까요.
같은 문자를 옆 원장님이 받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똑같은 글자, 똑같은 시각인데 그분은 흔들리지 않고 저는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흔들림을 만든 건 문자 자체가 아닙니다. 문자와 저 사이 어딘가에 뭔가가 하나 더 끼어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이 학부모가 곧 애를 뺄 거다, 소문이 날 거다, 나는 무능한 원장이다"까지 0.5초 만에 달려갔습니다. 문자는 열두 글자였는데, 제가 거기에 붙인 이야기는 문단 하나였습니다.
이 구조를 2천 년 전에 정확히 짚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입니다. 그는 재위 내내 국경 전쟁터를 떠돌았고, 그 얼어붙은 다뉴브 강가 막사에서 밤마다 자기 자신에게 일기를 썼습니다. 그게 지금 『명상록』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책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겁니다. 그 책은 출판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아무도 안 볼 걸 전제로, 오직 자기 마음을 다스리려고 쓴 자기 처방전이었습니다. 황제가, 전쟁터에서, 매일 밤, 흔들리는 자기를 붙잡으려고요.
그가 거기서 되뇐 답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흔드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내가 붙인 판단이다. 퇴원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퇴원 = 나는 실패했다"는 도장이 나를 괴롭힙니다. 항의가 밤잠을 뺏는 게 아니라 "항의 = 곧 다 무너진다"는 해석이 밤잠을 뺏습니다. 사건과 나 사이에는 언제나 내가 찍은 도장이 하나 끼어 있고,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사건이 아니라 그 도장입니다.
평정심은 성격이 아니라, 매일 돌린 절차였습니다
흔들림이 판단에서 온다는 걸 알았으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여기서 제가 오래 착각했던 게 깨졌습니다. 저는 옆 원장님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강철 멘탈을 타고났다고요. 그런데 마르쿠스를 보면 그 전제가 무너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로 안 흔들리는 사람이라면, 매일 밤 자기한테 "진정해라, 이건 네 것이 아니다, 지나간다"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황제가 죽을 때까지 그 일기를 놓지 못했다는 건, 그가 죽을 때까지 흔들렸다는 뜻입니다. 그는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똑같은 절차를 돌린 사람이었습니다.
이 대목이 제게는 묘하게 위로가 됐습니다. 평정심이라는 게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반복해서 굴린 절차라면, 그건 배울 수 있는 거니까요. 저는 이걸 다른 데서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걱정하는 소심한 원장님이, 설명회를 세 번 네 번 치르고 나면 "이것도 지나가겠지"를 말하기 시작합니다. 긍정적인 성격으로 다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같은 상황을 통과시키는 절차가 몸에 밴 겁니다. 낙관주의자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냉소적인 사람도 평정심을 연습할 수 있고, 저 같은 트리플 A형 걱정쟁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밤 열한 시의 문자에 무너지는 원장님, 당신은 멘탈이 약한 게 아닙니다. 흔들림을 통과시키는 절차를 아직 안 배웠을 뿐입니다. 성격을 바꾸라는 게 아니라 — 성격은 저도 못 바꿉니다 — 흔들릴 때 돌릴 순서 하나를 손에 쥐면 됩니다.
흔들릴 때 돌리는 네 칸
그래서 그 절차가 뭐냐. 마르쿠스의 일기에서 오래 헤맨 끝에 저는 이걸 네 칸으로 정리했습니다. 외우는 게 아니라, 흔들릴 때 종이 한 장에 그어놓고 순서대로 통과하는 겁니다.
첫째 칸, 가릅니다. 흔들림이 오면 제일 먼저 종이 가운데 선을 하나 긋고 왼쪽에 '내 것', 오른쪽에 '내 것 아님'을 적습니다. 학부모가 화가 난 것, 그 학부모가 애를 뺄지 말지, 소문이 어떻게 날지 — 이건 다 오른쪽입니다.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슨 말로 답할지, 지금 이 반을 어떻게 운영할지 — 이것만 왼쪽입니다. 이 선 하나를 긋는 데 30초면 됩니다. 그런데 이 30초가 "다 무너진다"는 문단을 반으로 접어줍니다.
둘째 칸, 도장을 뗍니다. 오른쪽에 적힌 것들, 즉 내 것이 아닌 것에는 대개 '나쁘다'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항의 = 재앙." 그 도장을 뗍니다. 사실만 남깁니다. 사실은 "한 학부모가 반 운영을 물었다"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나는 무능하다"는 제가 찍은 겁니다. 사실과 내가 붙인 해석을 두 줄로 나눠 적어보면, 대부분 해석이 사실보다 열 배는 깁니다.
셋째 칸, 지금에 섭니다. 작년의 그 학부모, 내년의 등록률 말고, 오늘 밤 내가 실제로 손댈 수 있는 단 한 가지만 봅니다. 대개는 "내일 아침에 차분한 답장 한 통 보내기" 하나입니다. 그 한 가지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없는 걸 붙잡고 있으니 새벽 두 시까지 안 놓이는 겁니다.
넷째 칸, 리셋합니다. 다음 상담, 다음 수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1분만 비웁니다. 저는 이걸 상담과 상담 사이에 씁니다. 미리 정해둔 좌우명 세 줄을 떠올리고, 앞 상담의 감정을 거기 두고 나옵니다. 마르쿠스가 매일 밤 일기로 한 게 이 넷째 칸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딱 한 칸만 써보셔도 됩니다. 다음에 밤늦게 문자가 오면, 답장을 고쳐 쓰기 전에 종이 한 장에 세로 선을 하나만 그어보십시오. 왼쪽 '내 것', 오른쪽 '내 것 아님'. 그거 하나면 첫째 칸은 통과한 겁니다.
흔들림을 없애려 하지 마세요, 통과시키세요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드리고 싶은 렌즈는 하나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건 마르쿠스도 못 한 일입니다. 대신 흔들림이 왔을 때 통과시킬 순서를 하나 가지십시오.
이건 항의나 퇴원 같은 큰 파도에만 쓰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등록률이 한 주 떨어졌을 때, 강사가 갑자기 그만두겠다 할 때, 옆 학원이 잘나가 보여 조바심이 날 때 — 새 사건은 계속 옵니다. 사건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막을 수 있는 건 사건과 나 사이에 끼어드는 도장 하나입니다.
저는 아직도 밤늦은 문자에 심장이 먼저 내려앉습니다. 성격은 안 바뀌더군요. 다만 이제는 내려앉은 다음에 종이를 폅니다. 선을 긋고, 도장을 떼고, 오늘 할 한 가지를 보고, 1분을 비웁니다. 그러고 나면 그 문자는 여전히 열두 글자입니다. 무너지는 밤이 무너지지 않는 밤으로 바뀌는 건, 멘탈이 강해져서가 아니라 절차가 생겨서였습니다. 평정심은 타고나는 성격이 아니라, 매일 돌리는 절차입니다.